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2014 롤드컵 결승 후기 : 안전불감증의 협곡 방문기

 원래 계획대로라면 경기장에 1시 전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둘러보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아서 2시 반 좀 안되서 도착할 때만 해도 이후에 펼쳐질 지옥도는 상상하지 못했다. 3시 30분에 시작하는 행사에 미리 티켓 받았는데 한시간이나 일찍 왔으면 별 일 없겠지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우선 어떻게 입장하라는 안내판이나 방송이 전혀 없었다. 방송시설은 있었지만 분실물을 불러주는 정도였다. xx고등학교 누구누구가 뭘 잃어버렸는지도 중요한데 운영측이 개념을 잃은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잔디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석이라 따로 들어가면 되는 거였지만 사전공지도 현장 안내도 없었으니 다 같이 들어가나보다 하고 줄서러 끝으로 가는데만 20분 넘게 걸렸다.


 4만명을 한 게이트로 몰아넣고 일일이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는 미개한 생각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이것보단 인솔을 잘했을 것 같다. 40분 동안 줄을 섰지만 스태프나 안전 요원은 보이지 않았다. 3시가 넘어서야 스탭 한 명이 걸어와서 이제 소지품 검사 안하고 빠르게 입장시킨다고 소리를 쳤는데 저 줄 끝까지 가는데만 얼마나 걸렸을까.

 그런데 더 골때리는건 내가 서있는 1km짜리 줄은 짧은 줄이었고, 나보다 일찍 온 무고한 희생자들은 터널 안에 있는 더 긴 줄에서 검은먼지 마셔가며 또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줄이 두 개가 되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그걸 통제할 인원이 없어서 저 짝이 났다는 건 정말 미친 이야기다. 그래 이게 바로 안전불감증의 나라지.



 아무튼 반바퀴를 돌아서야 다이아 줄이 따로 있다는 걸 주위 사람들의 웅성웅성으로 알게 되었고, 게이트 앞 스탭에게 물어서 입장을 하게 되었다. 입장하고 나서도 앞 사람 따라가는 거 외에 다른 안내는 받지 못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는게 마치 심판의 그날에 오른편으로 가야하나 왼편으로 가야하나 안내를 못받은 그런 기분이었다. 아무튼 일단 전용 게이트로 가니 안내가 없는 거 외엔 입장은 쾌적해서 좋았다. 티켓을 확인받고 입장 팔찌, 응원도구, 스킨 코드 등을 받았다. 이게 선물이 아니라 짐승의 표가 아닌가 다시 확인을 해야했다.




 누가 내 자리에 앉아있길래 안전요원보고 갱 좀 와달라고 해서 쫓아내고 앉았다. 다행히 행사 시작엔 늦지 않았지만 점심도 못먹고 물도 못마시고 헉헉. 스토어는 한시간 후부터 재오픈한다고 해서 앉아서 오프닝을 봤다. 이매진 드래곤스 짱짱맨. 경기장 안엔 별다른 음향 이슈가 없었는데, 관중석에선 심하게 울려 들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1세트 밴픽 전에 미리 스토어 앞에 줄을 서서 관중석을 봤다. 저 많은 사람들을 게이트 하나로 들여보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소오름.물론 운영 측은 절대 공지나 안내를 하지 않기에 재오픈 전에 매진된 물품들을 방송을 해준다거나, 게시해준다거나,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스탭이 와서 이야기를 해준다거나 하는 배려는 없었다. 롤드컵하다가 전쟁 났으면 한강다리 끊기 전에 알려주긴 했을까 궁금하다.

 
 아리 피규어는 매진이었기에 야스오 티셔츠를 하나 샀다. 요새 티셔츠 엄청 사는 것 같다. 자리로 돌아오니까 이번엔 아까 쫓아낸 사람이 내 의자에 짐 올려놓음.. 꼭 저렇게 안내도 될 티를 내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지 ㅇㅇ 짐도 의자 밑에 두면 되는걸 발 앞에 놔서 지나가는 사람들 다 스탭 밟으면서 가게 만들고 멍청한 애들 많으니 이런 거나 좀 안내해주지.


 4만명의 안전엔 별로 신경을 안썼지만 다른  준비는 열심히 한 티가 아주 많이 났다. 저 밴픽 화면이 아주 신기했는데 지금은 1,2픽은 된 상태고 나머지 3명은 픽 대기 중이라 계속 흑백 화면으로 챔피언이 바뀐다. 픽이 되면 전체화면으로 챔피언 일러스트가 나왔다. 장내 조명도 상황이 바뀔 때마다 시시각각 변화해서 몰입도를 높히고 긴박감을 줬다.


 경기 내용들은 뭐 삼성 화이트가 워낙 완벽한 승리를 거뒀기에 별로 할말도 없지만 삼성 화이트가 3세트 신지드 꼴픽만 안했어도 무난히 여섯시 내 고향 시작과 함께 3:0으로 끝났을 것 같다. 뭐 한 세트 졌다고 해도 저 팀의 강력함이 별로 빛 바래지도 않았다. 요약해보면 1,4세트는 같이 결승전에 오르긴 했지만 체급이 다르다는 걸 보여줬고, 2세트는 한수 아래의 팀이 운영으로 뭔가 해보려고 하면 그 전에 찢긴다는 교훈을 알려줬고, 3세트는 그래도 꼴픽은 하면 안된다 그 정도?


  하아 롤 재미없다 말하는 듯한 인섹 표정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잔해. 그래도 한판은 이겼잖아. IPL에서부터 이번 롤드컵까지 로얄 클럽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참 멋있었다. 


 케스파 전병헌 협회장이 전국체전에 e스포츠 들여놨다고 관중들 앞에서 자기 업적링크를 했다. 제대로 된 리더가 오면 아무리 답없는 조직도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 리더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아 삼성 우승, 삼성 우승. 삼성 화이트의 롤챔스 결승 두 번 다 직관했고 오늘은 롤드컵 결승전도 왔지만 처음엔 응원했었는데 갈수록 정이 떨어진다. 우승 인터뷰에서조차 전용준 캐스터가 '세계 최고의 미드가 누구냐' 관중들에게 물으니 '페이커 페이커' 하는게 기실 이유가 있다. 


 생각난 김에 멀리서 본 페이커. 페이커 귀엽지. 나도 좋아해 ㅇㅇ


 미소가 매력적인 이매진 드래곤스 기타리스트. 삼성 화이트 애들 들러리로 뻘쭘하게 트로피 들고 서있게 시켜놓고 클로징 공연 시작했는데, 와 너무 잘해서 삼성 화이트 선수들 서있는 것도 까먹고 봤다. 오기 전에 예상 플레이리스트 예습하길 잘했어.


 운영이 노답이라는건 끝날 때라고 변하지 않아서, 전광판에 안내 공지 띄우거나 스탭이 직접 인솔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제 끝났으니 나가라고 방송한다거나 그런 건 없고 앞 사람 따라 나갔다. 멀리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스토어가 보인다.


 밖에서 본 경기장 전경. 아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 왜 학생들은 교통카드 안가지고 다녀서 이런 행사 있을 때마다 지하철에서 일회용 승차권 발급받느라 20,30분씩 기다리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예전처럼 은행가서 만들고 그러나 이젠 편의점에서 그냥 사면 되는 거 아닌가?

 전체적으로 너무 운영이 어처구니가 없는 행사라서 심하게 실망했다. 그래도 티켓 박스 밖엔 안전 요원 두명은 있더만 그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던 경기장 밖에서 터널까지 줄엔 통제 스탭 한명도 없는 건 정말 돌았냐는 말밖에 할말이 없다. 게임 운영은 못해도 사람 속만 터지고 말지만 행사 운영은 저따위로 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처음엔 온게임넷이 운영한 줄 알고 이것들은 옛날부터 팬들 주구줄창 건물바닥에 마냥 앉혀놓고 장사하는 게 너무 익숙해서 이젠 상암구장에서도 저 짓거리 하는구나 생각했는데 라이엇이 했다니까 더 어처구니가 없다. 앞으론 오프에 갈 마음이 안든다. 뭐 스킨 코드도 받았고 이매진 드래곤스 공연도 봤으니 돈이 아깝진 않은데 아주 개판운영에 학을 뗐으니까. 

 그리고 방송에서 어떻게 나갔는지 몰라도 현장 반응 별로다 이매진 드래곤스가 실망하겠다 해외 시청자들이 의아하겠다 운운하는 이야기들을 좀 봐서 하는 말인데, 돈 들이고 시간들여서 직접 온 사람들이 TV보다가 댓글다는 이들보다 열정이 부족할 것 같지도 않고 실제 현장 분위기는 좋기만 했다만 도대체 관중을 외국인이 어떻게 보는지를 왜 신경 쓰지? 진짜 외국인 눈치보는 DNA가 한민족 피에 흐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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